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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어린 시절, 할머니와 대화하기 위해 목청을 가다듬은 이유

by chocolatebox 2021.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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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우리 할머니.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우리 곁을 떠나신 할머니.

오늘 같이 비오는 날이면 더욱 생각나는 사람입니다.

비 오는 날 마루청에 함께 앉아 말 없이 비 오는 소리를 함께 듣고 있었죠.

아니 돌이켜 생각해보면 비 오는 소리를 좋아했던 건 저였고, 할머니에겐 그저 고요했을 뿐일지도 모르겠네요.

우리 할머니와 대화를 하려면 누구나 목을 가다듬어야 했습니다.

할머니가 귀를 먹어서 평상시 목소리로 얘기해선 대화가 전혀 되질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가야 오늘은 씨름 안 허냐?"

"아까 끝났어요."

"뭐라고?"

"아까 끝났다고요!!"

"...."

"아까 끝! 끝나고 다른 거 해요!"

꼬맹이 시절엔 크게 말씀드리면 그래도 알아들으셨는데, 제가 커갈 수록 할머니의 귀는 점점 멀어져 갔죠.

아버지는 할머니에게 보청기를 해드린 걸로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귓바퀴에 한 가득 차는 그 보청기가 여간 불편하셨나 봅니다.

데이비드 오먼의 책 『볼륨을 낮춰라』 (원제: VOLUME CONTROL)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보청기를 처음 착용했을 때 주변의 소리가 좀 짜증스럽게 느껴지는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책에 따르면 뇌가 낯선 입력을 받아들이는 데 적응해야 하며, 보청기에 익숙해지는 데 한 달 정도 걸리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보청기를 며칠 껴보시던 할머니는 "보청기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고 자기랑 안 맞다며" 보청기를 자꾸 빼셨습니다.

그땐 할머니가 비싼 돈 주고 잘 들리게 했는데 왜 그러시나 했습니다.

책 『볼륨을 낮춰라』를 보면, 갑자기 들을 수 있게 된 사람들은 이따금 안 들릴 때의 평온함을 그리워한다고 합니다.

평소에는 뇌의 속임수 때문에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불편한 소리가 귀에 들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 할머니도 예상치 못한 자극들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었으니까요.

뇌는 단조롭게 계속되는 입력을 무시하고
덤불 속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이나 마른 나뭇잎이 불길하게 탁탁대는 소리 같은
예기치 않은 위협을 더 잘 감지하도록 진화해 왔다.
이는 잘 알려진 뇌의 속임수 중 하나이다.
『볼륨을 낮춰라』 P.261 참조

결국 할머니는 보청기 없이 쭉 살다가 가셨습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할머니가 잘 듣지 못하시는 것에 불편했지만 적응했습니다.

할머니가 계실 때 일부러 더 크게 얘기 하기도 하고 목청을 높여 설명했습니다.

집에서 TV 소리도 매번 빵빵하게 틀어뒀었죠.

사실 『볼륨을 낮춰라』를 읽기 전까지 모든 사람이 늙으면 다 어느정도 귀가 먹는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어르신과 사는 집에선 제가 어릴 때 소리치며 말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귀 건강은 노화에 따라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일상 생활에서 의식하지 못했던 소리 자극을 줄이고 귀 건강을 조심해야겠습니다.

우리가 오래 사는 것은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다만, 건강하게 사는 건 우리 하기에 달려있다.

출처 : 제가 가진 말버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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