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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뉴스 클리핑

[이국종 기고] “윤한덕의 ‘고통’을 헤아리기조차 쉽지 않았다” 리뷰

by chocolatebox 2019.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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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돈도니의 일상의 돈도니입니다.

 오늘 데일리 뉴스 클리핑에는 한국의 의료계를 위해 헌신하신 故 윤한덕 님을 기리는 이국종 교수의 글을 가져왔습니다. 감히 제가 다루기 조심스러운 글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이국종 교수의 글을 봐달라는 마음에서 리뷰하겠습니다.

 

기고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81411.html

2008년 나는 보건복지부 회의실에서 영국의 중증외상환자 치료 체계에 대해 발표했다. 외상센터 설립과 함께 헬리콥터를 이용한 항공의료 체계를 발표했을 때, 그 자리에 참석했던 응급의료인 대부분이 반대했다. 그러나 윤한덕 만이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내가 내민 영·미권에서 출간된 외상학 교과서들과 런던에서 가지고 온 자료들을 세밀히 들여다보았다. 그는 선진국에서 보편화하여 있는교과서적인 프로토콜을 알고자 애썼다. 한국에서 생산될 수 있는 중증외상환자 자료라는 것들의 수준이 그저 현실의 참상을 확인시키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그는 최선을 다해서 한국 응급의료의 중증외상환자 치료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나섰다. 그는 응급의학과 전문의였다. 해마다 배출되는 3000여명이 훨씬 넘는 의사 중 극소수만이 응급의료 계통에 뛰어든다. 전공의 수련 기간 중 외과계 중환자들이 응급실에서 죽어 나가는 모습을 너무 많이, 지겹게 봐왔다고 했다. 윤한덕은 그때의 응급실을지옥그 자체로 기억하고 있었다. 20여년이 훨씬 지난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응급실 문제들이 해결에 난항을 보인다는 사실에 그는 괴로워했다. 지옥을 헤매본 사람은 도망치거나 순응하거나, 판을 뒤집는 것 중 하나일 수 밖에 없다. 세 번째 선택은 무모하다. 그런데도 윤한덕은 셋 중 마지막을 택했다.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를 맡아 전국 응급의료의 수준을 끌어올리려했다. 그는 스스로 보건복지부의 산하기관인 중앙응급의료센터에 자신을 묻으며 출세에는 무심한 채 응급의료 업무만을 보고 살았다. 윤한덕은 임상 의사로서 응급의료를 실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응급의료 현장에서 올라오는 다양한 목소리들의 경중과 화급을 잘 구별하여, 보건복지부의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해왔다. 과정에서 의료계와 정부 사이에서 터져 나오는 수많은 갈등구조 속에서도 평정심을 잘 유지해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뛰어난 행정가였다. 위기 때마다 자신의 목을 걸어놓고 배수의 진까지 치고 달려드는 그 특유의 해결방식 덕에 한국의 응급의료 전반은 손톱 끝만큼씩이라도 개선되어 나갈 수 있었다. 1년이 멀다 하고 보건복지부의 담당자들이 바뀌며 다른 목소리를 내거나, 국립의료원장이 바뀌거나, 국회의 다수당이 바뀌거나,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변화하며 쏟아져 내려오는 각기 다른 정책적 포커스 속에서도 그는 자기 자리를 지켰다. 현재 대한민국 응급의료체계 어느 곳에도 윤한덕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부분은 없다. 우리는 윤한덕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그는 죽을 힘을 다해서 응급의료의 구석구석까지 들여다보며 그 수준을 끌어 올리고자 했지만 그의 눈높이에 맞게 돌아가는 것은 거의 없었다. 윤한덕이 세상을 떠나자 많은 사람이 다투어 그의 공을 치하하고 개선책을 결의에 찬 모습으로 발표하고 있는것을 보고 들으며 난 기가 막혔다. 지금 앞다투어 발표하는 그 결연한 계획들의 10분의 1이라도 몇 달 전에 집행해 주었으면 윤한덕은 살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일은 없다. 어차피 윤한덕이 떠나간 사실도 며칠 뒤면 언론에서 사라질 것이고 쏟아져 나왔던 각종 대책 및 결연한결심들도 곧 날아갈 것이다. 우리는 한국사회에서 보기 어려운 영웅을 잃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사심 없이 스스로 지옥 속으로 걸어 들어가 온갖 슬픔과 좌절을 겪으면서도 최후까지 피투성이 싸움을 하다가 삶의 대부분을 보냈던 공간에서 단단하게 앉은 채 세상을 떠나갔다. 세상을 떠날 때조차 그는 한가하게 누워서 쉬지 않았고, 그는 응급의료체계 개선안에 대한 서류들을 끝까지 잡고 있다가 함께 가지고 갔다.

 

기고문을 읽고 처음 든 감정은 죄송함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의료 개혁의 전면에 서있는 이국종 교수는 잘 알고 있었지만 윤한덕 교수님의 노고는 전혀 몰랐다는 것에 대한 죄송함이었습니다. 한편으로 감사했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사셨고, 윤한덕 교수님이 떠나고 남은 우리가 교수님이 가져온 혜택을 은연중에 누리며 살고 있다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문득 드는 생각이 이국종 교수에 대한 걱정이 들었습니다. 의료계의 많은 사람들이 이국종 교수의 의료 개혁에 대한 열정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폄하하곤 합니다. 그런 이국종 교수에게 힘이 되어 주었던 중요한 사람 중 하나인 윤한덕 교수님께서 곁을 떠나셨습니다. 추운 겨울의 사시나무와 같은 상황에서 지지대가 되어주었던 사람이 떠났으니 그 상실감은 이루어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또한 앞으로 이국종 교수가 응급의료체계를 개선하려는 시도는 더욱 험난한 길이 예상됩니다.

 

윤한덕 교수가 그리고 이국종 교수가 종사하는 응급의료체계가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응급의료체계를 원활하게 유지하고 발전하기 위한 의사가 부족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매년 수많은 의사가 배출되지만 그 중에서 소수만이 응급의료를 담당하게 됩니다. 노동 강도가 극도로 심하기 때문이죠. 의사 치고는 편한 수준이 아니라 정말 극한의 노동강도라고 합니다. 저는 한 때 2년 가량 매일 응급실을 들락날락 해봤기에 응급실이 얼마나 지옥에 가까운 곳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응급실 의료진들은 응급실에 오는 환자들의 욕설과 민원에 골머리를 앓는다고 항상 토로하곤 합니다. 하루에 몇 시간씩 응급환자를 진료하기도 바쁜데 사람까지 상대하자니 여간 보통 일이 아닐 것입니다.

 

응급의료의 노동강도가 높다면 인원을 더 늘려 개인에게 주어지는 노동강도를 낮추면 되지 않을까요? 하지만 여기에는 근본적인 문제인 돈이 있습니다. 현재 많은 병원의 응급실은 적자를 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기에 의사와 간호사 등을 더 채용한다면 적자 폭이 더 커져 병원 운영에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소도시에 소재한 병원은 응급실을 폐쇄하기도 할 정도로 운영이 어려운 현실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책은 바로 응급실이 적자가 나지 않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의료수가를 정상화하여 응급실이 수익을 낼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병원의 이득에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응급실로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면 병원은 앞다투어 응급실을 개설할 것이고 긴급한 환자들은 가까운 곳에서 신속한 진료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응급실에서 의료수가를 정성화 또는 인상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이득이 될 것입니다.

 

이번에 윤한덕 교수님께서 떠나시며 우리 사회에 남기신 마지막 경종을 잊어선 안 됩니다. 응급의료의 중증외상환자 치료 시스템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의료진이 일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의료진이 일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선 응급의료에서 발생하는 병원의 적자 극복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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