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코리아 디스카운트’, 북한만 탓할 수 없다
http://news.donga.com/3/all/20190223/94252634/1
한국 연기금의 덩치는 월가에서도 쉽게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지만 CEO 임기가 단명하는 문화는 여전하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도 3년 임기를 넘기면 장수 CEO로 대접을 받는다. 월가에는 “직업이 사장”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베테랑 CEO가 즐비하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은 14년째 CEO로 일하고 있다. 로이드 블랭크파인 골드만삭스 선임회장도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12년간 CEO로 일했다. 인맥을 동원해 전화 한 통으로 실무자들이 해결할 수 없는 일을 뚝딱 처리하는 베테랑 전문가들이 한국 금융권 CEO들의 이름이나 제대로 기억할까 싶다. 실무진에 베테랑 전문가가 포진하고 있으면 그나마 낫다. 하지만 국내 연기금의 해외 사무소와 인력 규모는 외국 연기금은 물론이고 민간 금융회사에 비해 뒤처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 지식과 풍부한 경험보다 직급과 직위 등 수직적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조직문화에서는 전문가들이 발붙이기 어렵다. CEO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람을 물갈이하는 ‘적폐 청산’도 ‘베테랑 기근’의 원인이다. 적폐 청산이 고장 난 시스템이 아니라 나와 다른 성향의 사람들을 겨냥할 때 베테랑은 사라지고, 전문가는 숨어 버린다. 핵심 인력이 이탈하면서 ‘전문가 기근’ 현상에 시달리고 있는 연기금은 국민의 자산을 맡아 관리하는 ‘수탁자의 책임’을 다하기도 벅차다. 한국 기업이나 금융회사가 세계 시장에서 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북한 핵위협 등 지정학적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2. 대통령의 ‘경제 올인 행보’는 성공할 수 있을까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83272.html#csidxae4cccedf4e845ab8e63955652cb45f
SK가 120조원 규모의 반도체 투자계획을 내놨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2022년부터 공장 4개를 짓는 내용이다. 그동안 수도권 규제로 인해 공장용지를 구하지 못하다가, 문재인 정부의 허용 방침에 따라 길이 열렸다. 대통령은 50여일간 경제현장을 직접 방문하고, 대기업·중소기업·벤처기업을 잇달아 만나 투자·고용 확대를 당부하고 경제 활력 제고를 위한 정부의 의지를 강조했다. 그야말로 ‘민생경제 살리기’를 위한 ‘총력전’이다. 대통령의 ‘경제 올인 행보’와 관련한 ‘2기 경제팀’의 역할을 “위기관리”로 압축된다. 목표는 대통령의 지지율을 상승세로 반전시키고, 지지율 하락의 최대 원인으로 꼽혀온 민생경제에서 가시적 성과를 거두는 것이다. 현 상태에서는 내년 총선도 어렵다는 판단이다. 위기관리의 핵심 수단은 대기업의 투자·고용 유도와 사회간접자본 투자 확대다. 분위기 전환은 일부 그룹의 투자 발표로 이어졌다. SK가 대표적이다. 현대차도 ‘광주형 일자리’ 투자에 서명했다. 삼성의 동참 가능성도 제기된다. 노사정도 주 52시간제 보완을 위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에 합의했다. 40%마저 위태로워 보였던 대통령 지지율이 1월 중순 이후 반등하기 시작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와도 맞물려 지지율이 50% 안팎까지 회복했다. 하지만 관건인 민생경제에서의 성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소득격차가 더 벌어지고, 실업자와 실업률이 치솟는 등 부정적 경제지표들이 쏟아지고 있다. 민생경제가 나아지지 않으면 대통령 지지율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역대 정부의 ‘정책변신’은 성공한 적이 거의 없다. 정책 변신은 방향의 옳고 그름을 떠나, 정책의 일관성 상실로 인한 불확실성 증가와 추진 동력 약화를 피하기 어렵다. 앞으로 ‘위기관리’ 기조가 강화되면, 개혁이 더 뒷전으로 밀릴 가능성도 있다. 이런 경우 문재인 정부가 지난 정부의 전철을 되풀이 할 위험성도 커질 수 있다.
3. 북한을 테스트베드로 삼을 수 없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882951.html#csidx093516d81bb661e83ee142e5ba22bde
“북한에 스마트시티를 위한 테스트베드를 설치하자”는 민경태의 주장은 참신하지만 이 주장은 남북협력사업에서 지켜야 할 중요한 원칙을 몇가지 놓치고 있다. 우선, 북한에 대한 몰이해가 가장 큰 문제다. 북한 지도부가 과학기술을 통한 경제발전을 추구하고 있다고 해서 검증되지 않은 기술들을 사회 전체에 펼쳐놓으려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중앙집중화가 잘되어 있고 최고지도자의 권위가 높다고 해서 현장의 의견이나 실상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처럼 금전적 이익을 중심으로 첨예한 이해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지만 북한에도 다양한 의견이 있고 그들 사이에 의견 대립도 심하게 일어나는 편이다. 그런데 이런 현실은 무시하고 “일사불란하게 정책을 집행”할 수 있다는 선입관에 기대어, 완성되지 않은 기술들이 적용된 “이상적인 도시 모델”을 북한 지역에 구현하기 쉽다고 민경태는 주장한다. 둘째, 이런 무리한 요구에 깔려 있는 과도한 과학주의도 문제이다. 민경태의 글에는 첨단과학기술이라면 먼저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하고 이를 규제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시선이 있다. 자율주행차가 멋있어 보여서 빨리 쓰고 싶어 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여전히 오작동과 기술의 미숙함으로 인해 인명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보면서도 서둘러 도입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이상하다. 아무리 선진적인 기술이라 하더라도 안전이 담보되지 못한 것을 우리 사회에 그대로 도입할 수는 없다. “북한을 테스트베드로 삼자”는 주장은 이러한 두 문제가 결합된, 오류가 중첩된 주장이다. 검증이 끝나지 않은 약물을 사람에게 곧바로 투입하지 못하는 것처럼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기술을 다른 사회에 곧바로 이식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북한의 경제 수준이 우리보다 못하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기부하는 형태가 되어서도 안 되고, 경제 자립도가 낮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상대를 무시해서도 안 된다. 서울과 평양 사이에는 경제협력의 상징인 개성공단이 이미 자리잡고 있다. 개성공단이 1단계 사업에서 정체되어 임가공을 비롯한 노동집약산업만 들어선 형태가 되었지만 원래 합의에는 2, 3단계에서 첨단산업 관련 기업들을 입주시키는 계획이 있었다. 일방적이고 위험천만한 스마트시티 건설 주장보다 남북이 합의한 개성공단의 첨단산업단지화를 실현하는 것이 더욱 현실성 있고 원칙에 충실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개성 밖이 아니라 개성공단 안에서, 첨단 기술 개발을 위한 실험실 수준이 아니라 첨단 기술을 활용한 산업단지를 만드는 것, 이것이 오히려 남북교류협력의 원칙을 지키면서 미래를 향한 새로운 시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4. [김형석 칼럼]인문학에 조국의 미래가 달렸다
http://news.donga.com/3/all/20190221/94217894/1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사상을 갖고 산다. 그 생각과 사상을 유지하고 전달하는 도구가 ‘말’이다. 언어가 없는 삶은 불가능하다. 인간의 삶이 다양한 것같이 말의 종류도 수없이 많다. 몇 세기 전까지만 해도 수천 종이 있었다고 학자들은 추산한다. 그런데 그 언어가 점차 사라져 간다. 이런 변화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그 두드러진 현상은, 문자를 갖추지 못한 말은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우리 주변의 여러 민족이 문자가 없기 때문에 언어를 잃어가고 있다. 또 문자와 언어가 있더라도 그 민족과 국가의 운명에 따라 언어의 세력도 약화될 수 있다. 내가 학생 때만 해도 대표적인 외국어는 세 가지였다. 비즈니스와 금융계를 위해서는 영어, 예술가나 외교관에 뜻을 둔 사람은 프랑스어, 과학이나 의학을 공부하는 데는 독일어가 선택과목이었다. 지금은 영어가 국제어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인문, 사회, 정치, 외교 모든 분야에서 영어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아시아는 어떻게 되어 있는가. 인구가 많은 중국어와 중국 문화는 더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일본은 인문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에 일본어 문화권도 국제적 영향력을 넓혀갈 것이다. 그 다음에는 한국어 문화권이 아시아의 미래를 어느 정도 이끌어 갈지가 남은 숙제다. 그러면 무엇이 정신적 문화권을 주도해 가는가. 자연과학이나 기계문명은 국가적 특수성이 없다. 한국어 문화권이 아시아를 넘어 세계 문화권에 동참하는 방도는 넓은 의미의 인문학이다. 예술을 포함한 정신문화의 특수성이다. 문화를 창조하는 교육을 강조하고 독서하는 국민이 돼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의 철학과 사상, 문학적 창조성, 민족적 개성을 지닌 예술 활동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노벨 문학상에 관심을 갖는 것도 마찬가지다. 인문학의 가치가 최선의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긴 역사가 지난 후의 조국의 운명을 생각해 보자. 지금의 강대국들은 로마의 후예로 남을 수 있으나, 정신문화를 창조해 남겨주는 나라는 아테네와 같은 문화를 계승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나 경제는 소중하나 그 자체는 인간 생존의 목적이 아니다. 문화사회의 가치는 인문학에서 평가됨을 명심해야 한다.
5. 그린수소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우려된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82620.html#csidx689d3030a2d060aa80858317c92f037
수소차 보급과 수소경제는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2000년대 초반부터 여러 나라에서 시도됐다. 그러나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넘어서기 어려운 장애물이 많았다. 이런 역사에도 불구하고 다시 전격적으로 발표된 수소경제 로드맵은 여러모로 우려스러운 점이 많다. 첫째, 정부 로드맵의 ‘원자번호 1번인 수소는 우주 물질의 75%를 차지할 정도로 풍부’하다는 말이 나오는데, 우주에서 수소를 가져올 수도 없는데 그런 말로 긍정적인 느낌을 주려고 한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둘째, 한국에서 수소차는 궁극의 친환경차라고 불리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미국에서 이미 판매 중인 수소차의 공인 연비는 전기차의 절반 수준이다. 반면 연료비는 수소차가 전기차의 3배 수준으로 매우 비싸다. 미국 국립연구소가 평가한 자료에 의하면 캘리포니아 기준 수소차와 전기차의 대기오염 감소 효과는 동일하다. 하지만 온실가스 감축 효과는 수소차가 전기차 대비 30% 적다. 결국 소비자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온실가스를 줄이고 대기오염을 줄이려면 전기차를 보급하고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게 훨씬 효율적이고 경제적이다. 셋째, 그린수소 공급에 대한 막연한 장밋빛 전망이 우려스럽다. 수소는 물(H₂O), 천연가스(CH₄), 석유, 석탄, 탄수화물, 목재 등 온갖 물질에 대량으로 포함되어 있다. 주변에 많기는 한데 이걸 물에서, 천연가스에서, 석유에서 떼어내는 게 쉽지 않다. 떼어내는 게 다가 아니다. 떼어낸 뒤 순도를 높이고 압축, 수송, 저장하는 과정 하나하나에 비용과 에너지가 들어간다. 현재로서는 그나마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방법이 외국에서 수입해 들여온 천연가스를 고온고압의 상태에서 수증기와 반응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수소를 만드는 것이 기술적으로 어려운 일은 아니다. 다만 현재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그냥 대기 중으로 배출하면 친환경성이 매우 낮은 ‘회색수소’가 된다. 수소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를 모아서 땅에 묻어버리면 ‘그린수소’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탄소포집저장 기술은 지금까지 효율적인 방법으로 성공시킨 사례가 없다. 비용이 워낙 많이 들어서 그간 추진된 탄소포집저장 사업은 번번이 무산됐다. 땅에 묻었던 이산화탄소가 새어 나오기라도 하면 그린수소는 다시 지구온난화를 심화시키는 회색수소가 된다. 정부는 일단 회색수소로 시작하지만 미래에는 물을 전기분해해서 수소를 떼어내는 수전해 기술을 사용해 그린수소를 만들겠다고 한다. 하지만 그린수소 생산 가능성을 면밀하게 들여다본 외국 기관들은 재생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할 경우 직접 전기차를 충전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라고 권고하고 있다. 또한 수소를 만드는 데 쓸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재생에너지를 공급하는 것도 어려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정부는 외국에서 그린수소를 생산해 수입해올 수 있으며 향후 수소 가격이 낮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아직 아무도 실증하지 못한 게 그린수소 생산이라는 점에서 막연하고 낙관적인 전망이다. 그린수소를 대량으로 효율적으로 생산하지 못하면 애매한 회색수소 인프라만 남게 된다. 다른 나라에도 수소경제에 대한 로드맵이 있고 시도가 있지만 훨씬 더 신중하게 추진되고 있다. 중국은 2025년까지 수소충전소 300곳, 승용차 4만대, 대형트럭 1만대 보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국 자동차 시장이 한국의 10배가 넘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의 2022년까지 6만5천대 보급은 중국보다 10배 이상 공격적인 목표다. 심각해진 대기오염 문제와 지구온난화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과감한 시도가 필요하지만 에너지 효율이 낮고 인프라 비용이 높은 수소차 보급을 필두로 하는 수소경제 로드맵은 제대로 된 검증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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