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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뉴스 클리핑

2019년 3월 3주차 뉴스 클리핑

by chocolatebox 2019.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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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국인의 ‘스위스 안락사’

http://news.donga.com/Top/3/all/20190308/94442673/1?utm_source=DongaApp&utm_medium=app&

한국인 2명이 2016년과 2018년 스위스에서 조력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이들은 자발적 안락사를 지원하는 국제단체 디그니타스(DIGNITAS)의 도움을 얻었다. 같은 방식으로 스위스에서의 안락사를 준비 중인 한국인이 107명에 달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세계에서 적극적 안락사가 허용된 곳은 스위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와 미국의 뉴멕시코, 캘리포니아, 워싱턴 등 일부 주를 꼽을 수 있다. 이 중 외국인의 안락사를 지원하는 곳은 스위스가 유일하다. 최근에는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인간의 기본권으로 보는 시각이 퍼지고 있다. 지난해 5월 치명적 질환 없이 안락사를 선택한 호주의 식물학자 데이비드 구달이 그런 예다. 고령화사회에서 ‘죽음을 선택할 권리’는 인류의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2월부터 소극적 안락사에 해당하는 연명의료결정법 (존엄사법)이 시행돼 3만5000여 명이 연명치료를 유보하거나 중단했고 11만4000여 명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적극적 안락사에 대해서는 거론되지 않는 가운데 이미 100명이 넘는 한국인이 해외기관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품위 있고 존엄한 죽음을 위한 논의, 좀 더 적극적으로 공론화할 필요는 없을까.

 

  1. 두 개의 캐슬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85468.html

<스카이 캐슬>이라는 드라마 제목을 보고 문득 든 생각은 또 하나의 캐슬이었다. 최상위 0.1%의 까마득히 높은 성을 둘러싸고 있는 상위 10%의 성 말이다. 한국 사회는 국제적으로 볼 때 상위 10%가 전체 소득과 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 상위 1%의 소득집중도는 2016년 현재 약 12%로 주요 선진국 중 5위지만, 상위 10%의 집중도는 약 43%로 미국 다음으로 2위이다. 그렇다면 상위 10%는 누구일까? 노동자의 연봉만 따져보면 2017년 기준으로 연간 6746만원 이상을 벌어야 개인 기준 상위 10%에 들어간다. 가구소득 기준으로는 2018년 상위 10%의 경계값이 약 1억원이다. 이 상위 10%의 성 안 사람들은 사업가와 전문직 부자들뿐 아니라 대기업 정규직과 공기업 노동자 그리고 일부 공무원들이다. 성 밖에 90%인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소상공인들이 살고 있다. 더욱 먼 곳에는 노동시장 바깥의 빈곤층과 노인들이 존재한다. 문제는 성 안팎의 격차가 더욱 커지고 성벽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성의 높고 공고한 벽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격차 등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들이 오랫동안 쌓인 것이다. 그 벽을 허물기 위해서는 공정경제의 확립과 성 밖 노동자들의 조직화 등이 필요할 것이다. 이와 함께 대기업 노조와 공공부문, 그리고 각종 규제와 면허에 기초한 기득권들도 성벽의 일부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경쟁의 촉진과 임금체계를 포함한 공공부문의 개혁도 필요한 이유다. 더욱 효과적인 방법은 세금을 올리고 그것을 사회복지와 안전망을 대폭 확대하는 데 쓰는 것이다. 지난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에서 공공사회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터키보다 낮은 약 1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20%의 절반 수준이다. 최상위 0.1%에 집중되어 있고 최근 소득집중도 상승의 배경인 자본소득이나 자산에 대한 증세와 함께, 고소득층을 중심으로 근로소득에 대한 광범위한 증세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증세가 이리도 힘든 것은 역시 여론과 정치를 주도하는 것이 성 안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 중 많은 이가 스스로를 성 밖의 중산층이라 생각한다는 것도 중요한 요인일 것이다. 한국이라는 드라마가 비극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상위 10% 캐슬 안에서부터 성문을 열고 성벽을 허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1. 누가 한전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나

http://news.donga.com/Top/3/all/20190307/94424054/1?utm_source=DongaApp&utm_medium=app&

한전이 주택용 누진제와 산업용 요금체계 개편에 이어 전국 184만 곳의 농가와 기업농이 사용하는 농사용 전기료 인상을 추진한다. 이에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는 성명서를 내고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추진에 따른 전력 수급 부족을 농업인의 희생을 담보로 무마하려는 꼼수”라고 비판했다. “농사용 전기 수혜 대상을 축소하면 현 정부가 추진하는 스마트팜 사업에 막대한 영향이 예상된다”고도 했다. 이에 한전은 이해하기 힘든 반응을 내놨다. 해명자료를 통해 “농사용 요금체계 개편과 관련한 설명자료를 국회 에너지특위 등 대외에 제출한 바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 해명은 거짓말이다. 기자가 “왜 거짓말을 하느냐”고 항의하자 한전은 “그냥 넘어가 달라”며 ‘앓는 소리’를 했다. 사실 전기료 기사를 쓸 때마다 한전은 물론 전기요금을 인가하는 산업통상자원부까지 필요 이상으로 과민하게 반응하는 측면이 있다. 한전과 산업부가 민감해하는 것은 원자력발전을 줄이는 탈원전 정책과 관련이 있다. 이 때문에 한전과 산업부는 전기료 이슈가 있을 때마다 언론에 “탈원전 때문이라는 표현을 가급적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전과 산업부 모두 원전 가동이 줄면 영업비용이 늘어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비용 증가는 요금 인상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부와 한전은 전기료 인상과 원전 정책은 별개라고 강조한다. 농민과 기업이 전기를 펑펑 쓰는 관행을 잡기 위해 요금제를 개편하면 결과적으로 전기료가 올라갈 수 있고 적자도 메워지겠지만, 수익성을 높이려고 요금제를 개편하는 것은 아니니 자신들은 ‘무죄’라는 식이다. 농민들은 “탈원전으로 인한 전력 부족문제를 우리 희생을 담보로 해결하려 들지 말라”며 분노한다. 문제의 원인이 뭔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과소비라는 프레임으로 국민들에게 책임을 떠넘겨선 전기료 인상에 대한 의구심만 키울 뿐이다. 에너지 과소비는 과소비대로, 정부 정책은 정책대로 요금 인상에 미치는 영향을 공개한 뒤 전기료를 올릴 수밖에 없는 사정을 설득하는 것이 정직한 행정이다.

 

  1. 공부 잘한 여자들이 왜 회사에선 죽을 쑬까

http://news.donga.com/dobal/3/040301/20190307/94432577/1?utm_source=DongaApp&utm_medium=app&

학교 공부는 대개 여학생들이 더 잘한다. 중고교 뺑뺑이에서 남녀공학을 받으면 딸 있는 집은 좋아하지만(남학생들이 내신 밑바닥을 깔아준다나) 아들 둔 집에선 곡소리가 난다. 그 똑똑한 여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왜 사회에 나가선 학교 때만큼 못 하는 걸까. 열심히, 성실하게, 완벽하게! 학교에서 여자가 남자를 앞설 수 있었던 이런 특성들이 사회에선 되레 여자들 발목을 잡는다는 게 임상심리학자 리사 다무어의 주장이다. ‘SKY캐슬’을 떠올리면 이 말이 맞는 것 같다. 예서는 1등 아니면 의미가 없는, 재수 없이 잘난 여자애다. 예서와 전교 1, 2등을 다투는 혜나는 성취욕도 예서 뺨친다. 이를 굳이 학술적으로 표현하면 ‘여학생들이 남학생들보다 특히 학업에서 자기 지향의 완벽주의가 높다’가 된다. 이런 여자가 사회에 나가면 왜 실력을 발휘 못 하느냐고? 바로 그 안달복달, 악착같은 완벽주의 때문이다. 남녀 차이는 컴피턴스(competence·능력)가 아니라 컨피던스(confidence)에 있다는 거다. 여자는 난 아니야, 이걸로는 부족해,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면서 늘 자신 없어 한다. 그 바람에 있는 실력마저 보여줄 기회를 잃고 남자들한테 밀린다는 거다. 심리학자인 토마스 차모로-프레무지크(Tomas Chamorro-Premuzic)는 40개국 산업계 리더들을 조사한 결과 남자들이 여자보다 더 거만하고, 남을 잘 조종하며, 위험을 감수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했다. 문제는 이것이 카리스마적 리더십으로 종종 오인된다는 사실이다. 때로는 착한 것보다 착하게 보이는 것이 중요하듯, 자신 있는 것보다 자신 있어 보이는 것이 중요할 수도 있다.

 

  1. 조규일 진주시장은 왜?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85467.html

46일째, 파업은 중단됐다. 11일부터 버스 노동자들은 일터로 돌아갔다. 아니 돌아가야 했다. 노동자 자주기업 삼성교통 버스 노동자들은 진주시를 상대로 표준운송원가 현실화, 최저임금 보장을 내걸었고, 2017년 버스 노선 개편 당시 진주시가 약속했던 표준운송원가가 최저임금에 미치지 않는다며 현실적인 이행을 촉구했다. 삼성교통 버스 노동자들이 월급을 못 가져간 지도 몇개월째. 가족들이 경제적으로 견디기 힘들기도 했고 회사도 더 이상의 경영난을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삼성교통은 “진주시에 요구한 것은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노동자 2명은 아직도 철탑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진주시는 지난 1월21일 삼성교통이 파업에 들어가자 전세버스 100대를 즉각 투입했고 버스 앞에 ‘월급 제일 많이 받는 삼성교통에서 적자를 이유로 파업하고 있습니다’라는 왜곡된 펼침막을 내걸고 운행하도록 했다. 이는 근무일수와 시간을 고려하면 사실이 아니었다. 이 같은 일은 전임 이창희 진주시장 재임 시절에나 있을 법한 일인데 똑같다. 취임 전부터 ‘나는 전임과 다르다’며 시민 소통과 열린 시정을 내세워온 조규일 진주시장이지 않은가. 삼성교통 파업은 중단됐지만 진주시 시내버스 정상화, 최저임금 반영 운송원가, 노선 개혁, 준공영제 도입 등의 난제는 여전히 방치돼 있다. 먼저 파업을 풀면 대화에 임하겠다던 조규일 진주시장은 11일 현재, 여전히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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