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텍스트 선정 이유
리뷰를 할 텍스트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을 선정했다. 『군주론』과 『리바이어던』을 선정한 이유는 현대 정치체제에 익숙해져 있는 오늘날의 우리가 다른 정치 체제에 기반하여 사고하는 지식인들의 정치에 대한 관념을 배울 필요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는 현대에 채택된 정치체제이지 결함 없는 제도가 아니기 때문에, 과거 군주정의 시기에서 통치를 바라본 관점과 그리고 절대군주제가 무너지고 근대 사회로의 전환기에서 주권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현대 정치체제의 가치와 한계를 파악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2. 텍스트에서 정치와 인간을 보는 관점
『군주론』과 『리바이어던』 모두 인간을 보는 관점이 부정적이다. 마키아벨리는 인간의 본성을 낮게 평가한다. 그는 인간이란 원래부터 부정적인 방식으로 행동한다고 본다. 인간은 변덕스럽고 거짓말을 하며, 위험을 회피하려 들고 탐욕스럽다.[1] 한편 홉스는 인간은 모두 이기주의자들이어서 끊임없이 인간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길을 모색한다고 본다. 인간은 비참한 전쟁상태, 즉 자연상태에서 서로 경쟁하고 싸우는 일이 불가피한 것이다.[2]
마키아벨리와 홉스 모두 이러한 인간을 어떻게 하면 국가와 사회에 거스르지 않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했을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인간을 효과적으로 통치하려면 두려움을 활용해야 한다고 보았다.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것은 믿을만한 권력의 원천이 아닌 것이다. 인간은 편의에 따라 고마움을 저버리기 때문이다.[3] 따라서 군주는 지나치게 도덕에 얽매이지 않고 최선의 결과를 위해 재빠르고 능숙하게 행동해야 한다.
한편으로 홉스는 자유로운 개인들이 서로 간의 그리고 외부의 공격에서 보호받는 대가로 자신들의 자연적 자유의 일부를 포기하도록 만드는 계약을 맺고 강력한 주권자에게 자유를 양도한다고 말한다. 주권자는 인위적인 인격체로서 계약이 지켜지도록 강력하게 감독한다. 왜냐하면 칼의 뒷받침이 없는 계약은 한낱 말에 불과하며, 사람을 보호할 위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4]
3. 텍스트에 대한 비평
『군주론』이 권력욕에 사로잡혀 도덕은 한 치도 의식하지 않는다고 해석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마키아벨리는 도덕과 무관하고 반사회적인 조언을 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순전히 이기적인 동기에 의한, 그리고 국익과 무관하게 행사되는 무조건적인 잔인성을 찬성하지 않았다.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잔인성은 언제나 도덕적 근거를 가진다.[5] 그가 말하는 잔인성은 이후에 발생할지 모르는 훨씬 더 잔인한 행동을 예방하는 것, 즉 공익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군주론』은 전혀 부도덕하지 않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관점은 폭군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 이는 폭력에 대한 이기적 합리화이며, 정치적 안정을 이유로 하는 너무 큰 희생이라고 생각한다. 마키아벨리는 폭력을 통해 국가가 얼마나 더 부유해지고 더 안정되며 더 강력해졌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결과주의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6] 한편으로 그의 주장이 선과 악, 정치와 도덕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제시하고, 상황에 따라 도덕을 정하는 상대적인 도덕 개념은 현실 정치에서 더러운 손의 필요성을 뒷받침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홉스의 이론은 오늘날 국제관계에서 국가들 사이에 보이는 경쟁과 공격성을 나름 설명할 수 있다. 서로 강한 국방력을 보유하기 위해 강력한 군대와 힘을 추구하는 것에서 이를 알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이론을 받아들일 경우 국가들 사이에 맺은 협정을 충분히 집행할 만한 강력한 주권자가 생겨날 것 같지 않기 때문에,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를 예상할 수밖에 없다.[7]
홉스의 이론은 어떤 사람들이 사회계약을 어기고도 빠져나갈 수 있을 경우에 이들이 사회계약을 준수해야 할 어떤 이유도 제공하지 못하는 맹점이 있다. 또한 자연상태는 무의미한 허구, 즉 실제의 역사와는 관계없는 것에 대한 논증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홉스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지를 선포하는 일은 주권자의 몫이며 개인은 그러한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시민의 자유를 축소시키는 주장으로 보여 동의하기 어렵다.[8] 그럼에도 홉스는 사익이 우선시되는 통치는 공익을 파괴할 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부패의 근본 원인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4. 나의 정치와 인간에 대한 명제
사회에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정치체제는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키아벨리와 토머스 홉스는 어떤 체제가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에 의한 통치가 가장 합리적이라고 여겼다. 마키아벨리는 “군주 가문의 통치에 익숙한 세습 국가들은 신흥 군주국들보다 어려움을 덜 겪는다. 세습군주국의 군주는 선조의 관습을 넘어서지만 않으면 된다. 세습 군주국의 국주는 어떤 사건이 발생하든지 처리할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또한 “지위를 빼앗긴다 할지라도, 찬탈자가 불운을 겪게 된다면 그 군주는 언제든지 지위를 되찾게 된다.”고 보아 세습군주제를 옹호했다.[9] 안정적인 세습군주제 아래에서는 마키아벨리의 정치와 도덕의 분리 주장이 효과적일 것이다.
한편 홉스 또한 세습 군주를 옹호했다. “공적 이익과 사적 이익이 교차할 때 사람들은 사익을 선호하지만, 군주정에서 군주에게 있어서 공익이 곧 사익”이기에 문제가 없다. 또한 “군주는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원하는 때와 장소, 사람으로부터 자문을 구할 수 있으나, 주권을 가진 합의체의 경우에는 조언의 권리를 가진 소수에게만 자문이 허락된다.” 그리고 그러한 세습은 “미성년자나 선악을 구별하지 못하는 자에게 주권이 계승될 수도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이 경우 “주권의 행사를 다른 사람 또는 합의체에 위임하여 통치”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며 세습군주제를 옹호했다.[10]
오늘날 정치 체제에서 더러운 손은 필요악이 되어버렸다. 현실의 이익을 최고의 고려 대상으로 하고 감정이나 도덕 논리, 이상, 심지어 의식 형태의 요소를 배제하면서까지 필요한 경우 악행을 하는 것이 미덕이 된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손을 더럽히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며 손을 더럽히지 않는 정치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홉스는 최고의 주권자는 사리사욕을 도모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의 통치는 공익을 위한 것이다. 강력한 힘을 가진 주권자가 상황에 따라 선행과 악행을 하는 상대적인 도덕 정치가 오늘날에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1] 마키아벨리, 이남석 주해, 『군주론』, 평사리, 2017, 555쪽 참조
[2] 토머스 홉스, 최공웅·최진원 옮김, 『리바이어던』, 2016, 173-174쪽 참조
[3] 마키아벨리, 앞의 책, 555쪽 참조
[4] 토머스 홉스, 앞의 책, 136-138쪽 참조
[5] 마키아벨리, 앞의 책, 304-305쪽 참조
[6] 마키아벨리, 앞의 책, 594쪽 참조
[7] 토머스 홉스, 앞의 책, 131쪽 참조
[8] 토머스 홉스, 앞의 책, 248-249쪽 참조
[9] 마키아벨리, 앞의 책, 63-64쪽 참조
[10] 토머스 홉스, 앞의 책, 192-194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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